고려시대(918~1392)는 귀족 중심의 문벌 체제가 유지되던 시기로, 사회 전반에 걸쳐 남성 중심의 질서가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귀족 여성들은 단순한 가정 내 역할을 넘어서 종교, 문화, 경제 활동에서도 나름의 존재감을 보였다. 고려 여성은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복식과 사회 활동이 가능했으며, 일부 귀족 여성은 재산 상속, 사찰 창건, 문화 후원 등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본 글에서는 고려시대 귀족 여성들의 일상생활과 가사 노동, 사회적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고려 여성의 법적 지위와 상속
고려는 여성의 재산권을 비교적 인정한 사회였다. 『경국대전』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남녀 평등한 유산 상속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여성은 친정·시가 양쪽 모두와 교류하며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귀족 여성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고, 실제로 딸에게도 토지, 노비, 장물 등을 상속하는 사례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일상과 복식, 여가 문화
고려 귀족 여성은 비단, 모시, 면포 등 다양한 옷감을 사용해 색감이 화려한 의복을 착용했다. 화장도 성행했으며, 머리를 높게 틀어 장식하는 족두리형 머리 양식이 유행했다. 그들은 주로 집안에서 자수를 놓거나 문방구를 다루는 등 섬세한 공예 활동을 즐겼고, 가야금·비파·향가 등의 음악도 여가 활동 중 하나였다. 일부 여성은 불경 독송과 절 방문, 기도 등 불교 신앙을 통한 정신적 교양 활동에도 참여했다.
가사 노동과 가정 운영
귀족 여성은 직접 농사를 짓거나 시장에서 생계를 유지하진 않았지만, 가정의 경제와 식생활을 전담하는 관리자로서 기능했다. 음식 조달과 조리, 의복 관리, 노비 감독 등 일상의 중요한 업무를 지휘했으며, 제사와 혼례, 장례 등 의례를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특히 양반 가문일수록 의례 준비에 큰 비중이 있었고, 여성은 가문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종교와 여성의 사회 활동
고려는 불교 국가였으며, 귀족 여성의 사찰 창건과 후원이 활발했다. 대표적으로 문정왕후(고려 목종의 왕비)는 수덕사를 후원했고, 천추태후는 왕권 강화의 정치적 주체로도 등장했다. 이처럼 일부 귀족 여성은 종교와 정치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찰은 여성들의 사회적 교류 장소로도 기능했으며, 기도와 시주, 불경 공부를 통해 신앙과 공동체 활동을 이어갔다.
고려 귀족 여성의 역할 요약표
영역 | 주요 활동 | 특징 |
---|---|---|
법적 지위 | 유산 상속, 재산 소유 | 남녀 동등 상속 가능 |
일상생활 | 복식, 자수, 음악 감상 | 화려한 의복과 여가문화 |
가사 노동 | 식사, 의복, 노비 감독 | 가정의 실질 운영자 |
종교 활동 | 불교 후원, 사찰 방문 | 정신적 교양과 사회참여 |
정치 간접 참여 | 왕실 여성의 조정 개입 | 천추태후 등 영향력 행사 |
맺음말
고려시대의 귀족 여성은 단순한 집안의 안주인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를 잇는 실질적인 운영자였다. 상속권 보장, 불교 후원, 가사 운영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했다. 조선시대의 억압적 여성관과 달리, 고려 여성은 더 많은 자유와 자율성을 누렸으며, 이는 중세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