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의 해외 진출기

일제강점기(1910~1945)는 조선인들에게 가혹한 수탈과 억압의 시기였지만, 동시에 생존과 자립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이주와 진출이 전개되기도 했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들은 경제적 빈곤과 일제의 강제 동원, 자발적 이주 등을 통해 일본, 만주, 사할린, 하와이, 멕시코 등 해외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이들의 해외 노동은 단순한 이민의 차원을 넘어서, 일제의 경제 구조 속에서 조선인의 위치와 조건,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본 글에서는 조선인 노동자의 해외 진출 경로와 유형, 삶의 조건, 대표 사례들을 중심으로 조망한다.


일본 본토로의 노동 이주

1920년대부터 조선 농촌의 경제 파탄과 인구 과잉 문제로 인해 일본으로의 노동 이주가 급증했다. 초기에는 자발적 취업이 주를 이루었고, 1930년대 이후에는 국가 주도의 징용 제도가 도입되면서 강제적 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들은 주로 광산, 토목공사장, 제철소, 조선소 등에 배치되었으며, 일본 내 하층 노동자로서 극심한 차별과 열악한 환경에 놓였다.

만주로의 이주와 농장 노동

만주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 경제 확장을 위한 주요 거점이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만주 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조선 농민이 이주했으며, 그 수는 약 27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개간, 벌목, 농장 노동에 종사했고, 일부는 토지 제공과 자립 농민화를 약속받았으나 대부분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정착 실패를 경험했다.

사할린과 동남아 지역의 강제 동원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은 사할린과 동남아 지역에도 조선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동원했다. 특히 사할린에서는 석탄 채굴과 군수 산업에 조선인이 투입되었고, 종전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귀환하지 못한 채 ‘사할린 잔류 조선인’으로 남게 되었다. 동남아에서는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 군사도로 건설과 병참 노동을 위해 끌려갔다.

하와이·멕시코의 초기 이민 노동자

1900년대 초반에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과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의 이주도 있었다. 이들은 일본이 아닌 독립적 이민 경로를 택한 조선인들로, 주로 개화계 지식인 또는 경제적 기회를 찾는 자들이었다. 하와이 이민 1세대는 이후 한인 사회를 형성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고, 멕시코 이민자들은 극심한 고된 노동 환경 속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다.

해외 조선인 노동자 진출 요약표

지역 시기 주요 업종 특징
일본 본토 1920년대~1945 광산, 토목, 군수 공장 초기 자발 이주 → 강제 징용
만주 1930년대~1940년대 개간, 농장, 벌목 ‘만주 개척단’, 열악한 농업 환경
사할린 1940년대 채탄, 군수산업 전후 귀환 불가, 잔류 문제 지속
하와이 1903년~ 사탕수수 농장 자발 이민, 한인 사회 형성
멕시코 1905년~ 에네켄 농장 고립적 환경, 집단 이주 형태

맺음말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노동자 해외 진출은 단순한 취업 이민이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 하에서의 강제 동원과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 이들의 삶은 수탈의 역사이자 동시에 저항과 적응, 공동체 형성의 역사였다. 지금도 일본, 러시아, 멕시코, 미국 등지에서 그 후손들은 조상의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발자취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한국 근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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