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후반기는 단순한 국내 세력 다툼을 넘어 외세와의 외교전이 결합된 복합 전쟁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신라, 백제, 고구려는 각각의 생존과 확장을 위해 당나라, 왜(일본), 돌궐 등 외세와 외교 관계를 맺었고, 이 외교적 계산이 삼국 통일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신라는 당나라와의 동맹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곧 당나라와의 갈등으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게 된다. 본 글에서는 삼국 통일 전쟁의 외교 전략과 군사 전개 과정을 분석한다.
백제 멸망과 신라-당 동맹
660년, 신라는 김유신과 무열왕(김춘추) 주도로 당나라와 외교적으로 접근하여 군사 동맹을 맺는다. 이 동맹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공동 작전으로 연결되었고, 당의 소정방 장군이 이끄는 수군과 신라 육군이 연합하여 백제를 침공하였다.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가 백제의 결사 항전을 꺾었고, 웅진성(공주)의 함락으로 백제는 멸망한다.
고구려 멸망과 당의 속국화 시도
668년, 신라와 당은 다시 한 번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한다.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내분으로 혼란한 상태였고, 당의 이적·설인귀 등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결국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당은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지방행정체제로 편입시키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나당전쟁: 통일을 위한 최종 단계
신라는 당의 식민지화 시도에 강력히 반발하며 나당전쟁을 벌인다. 671년부터 본격화된 전쟁에서 신라는 문무왕의 지휘 아래 당군을 격퇴하고, 매소성 전투(675)와 기벌포 해전(676)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은 한반도 남부에서 철수하고, 신라는 사실상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하게 된다.
왜국과의 외교 전략
백제는 멸망 이후 왜국(일본)과 연합하여 부흥운동을 시도한다. 663년, 왜는 백제 유민과 함께 군대를 보내 백강 전투에서 신라-당 연합군과 싸우지만 대패한다. 이 패배로 왜는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신라는 이 과정에서 일본과의 외교 단절을 감수하면서까지 통일 전쟁에 집중했다.
삼국 통일 외교전 요약표
주체 | 외교 대상 | 전략 및 목적 | 결과 |
---|---|---|---|
신라 | 당나라 | 백제·고구려 멸망 위한 군사동맹 | 통일 기틀 마련, 이후 나당전쟁 |
백제 | 왜(일본) | 부흥운동, 외원 요청 | 백강 전투 패배, 부흥 실패 |
고구려 | 돌궐, 말갈 | 당 견제 위한 북방 외교 | 연개소문 사후 내분으로 실패 |
신라 | 왜 | 관계 단절 감수, 전면 충돌 회피 | 일시적 고립, 통일 집중 성공 |
맺음말
삼국 통일 전쟁은 단순한 군사력의 대결이 아닌, 복합적인 외교 전략과 국제 정세에 대한 통찰의 결과였다. 신라는 당과의 동맹, 왜와의 단절, 고구려·백제의 외교 실패를 이용해 한반도 최초의 통일을 이뤄냈다. 이 과정은 오늘날 동북아 국제 관계의 형성과 역사 인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