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동북아시아에서 국제 해상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고, 그 중심에 벽란도라는 전략적 항구가 존재했다. 벽란도는 단순한 무역 거점이 아닌, 고려의 경제와 외교를 지탱한 국제항이었다. 지금의 황해도 일대에 위치했던 이 항구는 중국 송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까지도 출입하던 다국적 교류의 현장이었으며, 다양한 물자가 유입되고 국내 생산품이 수출되던 교역 허브였다. 본 글에서는 벽란도의 항구로서의 기능, 수출입 품목, 외국 상인의 활동, 국가 경제에서의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고려의 국제 위상을 조망하고자 한다.
벽란도의 지리적 이점과 설립 배경
벽란도는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천연 항만으로,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최적의 무역 지점이었다. 특히 수도 개경과의 근접성 덕분에 행정 및 세금 운송에도 유리하였고, 대규모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수심 덕분에 자연적 조건이 뛰어났다. 고려는 이 항구를 국가 주도로 정비하고, 외국 상인을 위한 전용 시장과 관세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체계적인 항만 운영을 추진하였다.
주요 교역 대상국과 무역 품목
벽란도를 통해 고려는 중국 송나라, 일본, 유구국, 아라비아계 상인들과 활발히 교역하였다. 수출품으로는 인삼, 금, 은, 도자기, 비단, 종이, 서적이 포함되었으며, 수입품으로는 향신료, 유리, 도검, 면직물, 약재, 설탕 등이 있었다. 특히 아라비아 상인의 도래는 벽란도의 위상이 중세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일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외국 상인의 활동과 고려의 대응
벽란도에는 외국인을 위한 전용 숙소와 시장이 마련되었으며, 이들은 고려 정부의 허가를 받아 무역을 수행하였다. 상인들은 일정 세율의 관세를 납부하고, 고려 정부는 이들에게 번역관(통역인), 세관 관리, 경찰 등 행정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고려는 외국 사신에게 의례적 접대와 함께 예물을 하사하는 등 외교적 차원에서도 벽란도를 활용하였다.
표: 벽란도의 주요 교역 국가 및 품목
| 국가 | 수출 품목 (고려 → 해당국) | 수입 품목 (해당국 → 고려) | 기록 출처 |
|---|---|---|---|
| 중국 송나라 | 인삼, 서적, 종이 | 비단, 자기, 약재 | 송사, 고려사 |
| 일본 | 은, 종이, 장식품 | 도검, 황칠, 주철 | 일본서기 |
| 아라비아 | 금, 인삼 | 향신료, 유리구슬 | 페르시아 상인 기록 |
결론: 중세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서의 벽란도
벽란도는 고려시대의 국제 무역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동북아를 넘어 이슬람 세계와도 연결된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무역항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외교와 문화 교류의 통로로서 고려의 세계관과 개방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늘날 벽란도는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역사적 위상은 한국 해양 경제사의 핵심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